러시아의 음주문화와 알코올 정책 ① - 삶과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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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박사의 주류산업과 정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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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박사의 주류산업과 정책이야기

러시아의 음주문화와 알코올 정책 ①

 

조성기 경제학박사(아우르연구소 소장)

 

세계 최고의 음주국은 어디일까? 단연 러시아다. 2011년 세계보건 기구의 보고서에는 러시아의 1인당 순 알코올 소비량을 15.76ℓ라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보다도 거의 7ℓ 가깝게 많은 수준이다. 또한 러시아인들이 다른 주종보다 증류주를 많이 마시는 음주 소비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건강에 적신호를 시사한다.

 

그 이유로 러시아는 최근 알코올 중독을 막고자 야간에 증류주와 맥주의 판매를 금지하고, 주세를 올리는 등 다각적인 조치를 취해왔다. 저녁 식사 후 호텔에 맥주를 사가려고 슈퍼에 가도 맥주는 없고, 우리나라 모주 급에 해당하는 크바스(KBAC) 정도를 살 수 있을 정도다. 그러한 조치를 취한 결과 급격한 알코올 소비량 감소를 실현했다고 한다. 2013년에 1인당 순 알코올 소비량이 13.5ℓ까지 무려 2ℓ 가깝게 줄인 것이다. 이 수준은 유럽연합의 평균 정도가 된다.

음주량을 줄이려면 시간 제약이든 장소 제약이든 금주정책이 상당히 효과적임을 시사 하는 대목이다. 천하의 러시아인들이 술을 덜 마시게 되다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줄어들면서 불법주류가 동시에 증가하였기 때문에 공식 주류제조업자들의 매출은 더 줄었다고 울상이다.

술을 많이 마시게 되니 사회적 문제 뿐 아니라 정치, 경제, 보건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알코올 중독은 전사회적 문제이고, 술 애호적 음주문화가 팽배했다. 한편 주세 수입은 정부 재정에서 매우 중요했다.

 

러시아에 관한 자료들을 보면 러시아와 술을 별도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이 쉽게 가능하다. 먼저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를 두고 어느 것을 도입할 것을 고민하던 러시아황제가 그리스정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이슬람교는 금주를 규범으로 하므로 러시아인의 생활과 너무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1991년 러시아에서 보수파에 의해 발생한 쿠데타를 막은 힘은 무엇이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혹스럽게도 ‘보드카’라는 것이었다. 쿠데타 발발 후 옐친은 국회의사당을 떠나지 않았고 보드카에 취해 탱크에 맞서 목숨을 걸고 군중연설을 한 것이 주효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쿠데타군도 모의를 취중에 하였고, 부실한 준비가 결국 실패를 낳았다는 것이다. 러시아 역사에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보드카와 같이 해 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러시아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신다고 한다. 그러니 주정을 부려도 특별한 무례가 아닌 것이다. 그러한 경향은 과거의 우리 주당들의 행태와 유사하다. 하지만 우리는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우리와 러시아인들의 음주문화가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40%짜리 보드카가 특히 애호를 받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2-25% 짜리 소주, 40%의 전통소주가 각기 선호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증류주 소비가 상당 수준 된다는 것은 취향 상 유사점이다. 주량이나 음주 방법, 음주 후 결과에 대한 태도 등에서도 많은 유사점이 발견되어 흥미롭다.

 


◇ 음주문화사

러시아에서는 집에서 양조한 술을 마셨다. 가양주다. 초기의 주종은 꿀 술과 맥주였다. 술이 공식 양조된 초창기부터 모든 주류에 과세를 했는데, 명목은 ‘유흥세’였다. 보드카가 러시아 사회에 처음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인 1500년 대였다. 정부는 민영 주점을 폐쇄했고 소위 황제가 인가한 황제주점(Tsar Pubs)을 개설하였으며, 판매를 독점하였다. 판매시스템은 두 가지 유형이었다. 하나는 정부 직영주점이었고, 하나는 민간 위탁 주점이었다.

러시아의 음주사를 읽어 보면 서양에서 세무서 직원과 선술집 주인을 ‘퍼블리컨(Publican)’으로 똑같이 표현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부직영 주점은 전에 세리였던 이가 선술집 주인으로 고용되어 경영을 담당하였고, 민간 경영 주점인 펍은 허가세를 받고 민간인에게 위탁 운영되었다. 우리로 치면 전임 국세청 공무원이 술집 경영자로 임명되었다고 보면 된다. 스위스나 핀란드에서 판매가 전매사업인 것,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도 술, 철, 소금 생산이 중요한 전매사업이었던 것 등을 보면 그것이 러시아만의 특이한 일은 결코 아니다.

1600년 경 러시아 정부 예산의 중요한 부분이 술 판매 이윤이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1600년대 중반에 정부직영 술 판매는 사라지게 되고 전부 민간 위탁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4년 마다 경매를 통해 보드카 판매권이 변경되었다. 술집 주인들은 당연히 판매 이윤을 챙겼고 부유한 생활을 향유했다.

자료를 보면 1859년에서 1863년 사이의 연간 주류 판매 이윤은 2억 2천만 은화 루블(Rubles)이었다고 한다. 그 규모를 쉽게 설명해 보면 술 판매이윤이 국내시장을 기준으로 술을 제외한 모든 물품의 판매이윤의 10-11배 쯤 이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실로 대단한 규모였다. 당시 러시아의 주류 판매규모가 시장 교역재 시장 전체에서 절대적인 비중이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에 주세 수입이 내국세의 40%에 육박했다는 자료를 본 적 있다. 산업이 다양화되기 전 주류산업의 위상은 러시아든 다른 국가든 대단했다.

 

이 같은 상황은 주류 판매업자의 권한 남용을 가져왔고, 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쌓여 이를 증오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폭력사태도 발생하였고 절주운동 마저 나타날 조짐을 보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1863년 알코올의 생산과 교역 전반에 대해 주세를 부과하는 시스템이 나타나게 되었다. 러시아 정부의 알코올 정책 기조는 1904년 재무성에서 발표한 “알코올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국민복지가 증대되었다는 지표”라는 문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보건학자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 말이지만 사실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인간의 음주량은 일정량 이상을 넘기 어렵고 돈이 있어야 마신다. 술 소비량 증가는 다른 소득의 증가를 동시에 시사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다만 알코올을 기준으로 정책적 사고를 하는 방식은 다분히 러시아답다.

러시아의 전통적 음주문화를 이해하려면 농부, 노동자, 성직자들, 군인, 지주와 귀족들의 음주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농부는 통상 휴일, 결혼식 날, 축제일과 장례식 날, 마을의 집단행사, 품앗이를 한 날 마신다. 1870년경에는 농부 350명 당 1개의 주점이 있었다. 보드카에 지출한 비용은 가구당 36루블로 조사되고 있다. 그것은 연간 40%짜리 보드카 7통(12.3리터=20병=80잔) 정도였다고 한다. 술을 좋아하는 러시아인이 그 정도의 보드카밖에 마실 수 없었다는 것은 당시 러시아 농부들의 생활상은 상당히 어려운 수준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농부들도 상당 부분 굶주렸으며 식사는 대부분 빵과 고기를 넣지 않은 양배추 스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낙천적 성향을 가진 러시아인들은 휴일에는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농업사회로서의 러시아가 생산성이 낮았기 때문에 아마 휴일이 되어서야 농부가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자신을 확인한다는 것은 보드카 한 잔이라도 마시는 순간을 의미한다.

 

러시아 북쪽지방이나 시베리아와 극동지방의 소수민족들은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면서 짜르의 약탈적인 정책에 시달렸다. 이는 보드카를 통한 약탈을 의미한다. 원주민들은 독한 술을 마시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지방정부의 수탈대상이 된 것이다. 지방 장관들은 술을 판돈으로 모피를 사들였다. 또한 보드카를 팔아 토착민들의 권리를 대부분 사들였다.

예를 들자면 유목민들의 야영지에서 술 한 병의 가격은 4루블이나 되었는데 담비생가죽은 3루블에 거래되었다는 것이다. 불공정 거래다. 소위 알코올을 통한 약탈이 전체 식민지에서 자행된 것이다. 캐나다에 들어간 유럽인들이 행한 거래와 유사한 일이 러시아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노동자들은 술에 취 할 구실과 이유를 많이 가지고 있다. 당시 러시아 노동자들은 연간 196일 동안을 노동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봉급날 술 마시는 풍습은 예나 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돈을 움켜 쥔 그날, 노동자들은 근무 후에 당연히 술집 근처를 서성거렸다.

취직, 졸업, 만남과 헤어짐의 자리, 계약, 구매 등이 이루어졌을 때 술 마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노동계급은 어디에서든지 함께 어울려 마시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당시 도시에서는 3-6리터짜리 큰 병으로 술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3ℓ짜리 작은 병만 판매해야 한다는 규칙을 가진 도시도 나타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100그램이나 20그램짜리 작은 병으로도 판매되었다.

 

 

농부나 노동자 중에 빈곤층도 과음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특권층이 여유, 허영과 과시욕으로 과도하게 마셔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러시아 음주문화를 이야기할 때 성직자들의 문제를 빠트리고 지나갈 수는 없다. 러시아 정교의 경전에 물론 적당한 음주는 허용되었고, 와인이 교회의 예식, 의식, 영성체, 결혼 등의 성찬행사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도덕을 사표랄 수 있는 성직자들이 만취하는 행위를 할 때 일반인들은 즉시 보고 배웠다. 러시아에서 알코올 남용의 전도사가 성직자들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1697년 피터대제는 모스크바의 주교에게 성직자들이 주점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할 것을 명령하였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만취하는 습관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노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성직자들은 무진장 마셔댔다고 한다. 러시아의 성직자들도 황제나 주교의 명령을 위반한 것이다. 1880년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15명의 성직자가 취한 상태에서 행한 비행으로 인해 법적 유죄선고를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수도원 내에서의 문제는 더 심각하였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러시아의 수도원은 보드카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 사원에서 술 제조 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보와 전혀 다르지 않다. 수도승들이 너무 많이 마셔서 종교회의에서 수도원 내에 특별 감옥을 설치하기도 했다.

만취한 수도승들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금주교육을 시켰다는 자료가 있어 중세 러시아의 수도원에서 이미 알코올 남용 및 의존에 대해 적극적 대책을 시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지주들도 러시아식 음주문화를 확대한 또 하나의 계층이었다. 시베리아의 한 지주가 그의 아내에게 한 말이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여름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보드카 한잔(200그램)을 마시고(러시아인들은 컵으로 들이킨다), 들판을 걷는다. 6시에 다시 한잔 마시고 일터로 간다. 8시에 다시 보드카 한잔 마시고 잠깐 쉰다.”

다시 말하면 종일 그 지주는 2시간에 1잔씩 마셨다는 말인데, 그런 방식의 생활을 하는 지주가 상당수 되었다고 한다. 그 지주는 종일 취해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 육군도 공식적으로 알코올 배급을 받아 만취하는 경우가 성행하였다. 군대가 만취하는 것은 러시아군대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 전시 체제 하 러시아병사들은 전투 중에는 1주일에 3회, 전투가 없을 때에는 1주일에 2회 보드카 한잔(0.16리터)씩 배급받았다고 한다. 평시에도 지역사령관들의 재량 하에 1년에 15회 가량 보드카 배급이 있었다. 주로 날씨가 나쁠 때, 기동연습 중에,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등이었다. 자나 깨나 군인들도 마신 것이 아닌가.

술을 안 마시는 병사들은 보드카 대신 6 코펙(1/100 루블)을 받았다. 유명한 피터대제 치하의 해군은 1주일에 4잔씩 보드카 배급을 받았다. 1761년에는 하루에 한 잔씩 배급을 받았다고도 한다. 배급량이 많았다는 것도 되지만 이러한 허용적인 음주 규범이 병사들이 만취하는 습관을 유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술을 정기적으로 배급하다니 말이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극동 해군이 패배한 원인을 혹시 술 문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상상해 본다.

당시 군인들은 1/4-1/2정도가 술을 안마시고 돈으로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징병된 군인들은 제외한 나머지 직업군인들은 강제적으로 마시지 않으면 해고나 면직의 위협이 따르는 동료 간 강제음주가 성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술을 억지로 먹이는 풍습은 국가와 인종을 넘어 공통적인 일이 아닌가 한다. 1908년에 와서는 군대에서 술을 배급하는 일과 영내 주류 판매는 금지되었다.

 

귀족들이나 황제들이 만취했다는 기록은 수 없이 많다.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는 젊은 시절 주연과 폭음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그는 청년장교로서 근위대에 근무했는데 근위대의 전통적인 음주놀이를 통해 과음을 일상적으로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계단 오르기’는 1층에서 2층까지 계단에 1잔 씩 놓고, 기어오르면서 2층에 도착할 때 까지 차례대로 전부 마시는 놀이였다고 한다. ‘도열놀이’는 서로 12인치 간격으로 늘어선 장교들이 모두 보드카 잔을 들고 일시에 마시는 놀이였다고 한다. 소위 러시아 병사들의 원 샷 행사다.

 

러시아 음주문화는 과음과 폭음이 특징이다. 성직자, 군인, 귀족, 지주, 황족 등 특권 계층뿐만 아니라 빈곤 계층에서 과·폭음이 광범위하게 만연되어왔다. 보드카는 일상 생활의 중심에 있었고, 생활필수품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11년에는 독주인 보드카가 전체 소비의 89.3%의 차지했다.

마시는 방식도 맥주나 와인을 오랜 시간에 걸쳐 홀짝이는 방식이 아니다. 폭음을 하거나 한자리에서 많은 량을 마시는 방식이 일반화 되었다. 취중에 반사회적인 행동이나 범죄가 빈발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증류주 거래가 중단되었다. 동시에 와인 생산자와 맥주제조업자들이 정부의 우대조치를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인들이 취중 생활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1916년까지 불법증류주 제조, 가정 양조, 비 음료 알코올의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다. 1917년 10월 혁명이 일어날 때 까지 알코올 창고는 재고로 꽉 차 있었다.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들은 5년간 유형 또는 재산몰수 등 급격한 조치를 취했다. 그와 동시에 밀주의 판매를 막았다.

그렇지만 1925년에 보드카가 다시 공식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30년 동안 지속된 기아와 폐허, 2차 세계대전, 국가 재정비 기간 동안에는 알코올 문제나 관련 문제가 사라졌었다.

 

 

1958년, 1972년, 1978년 3차례에 걸쳐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와 내각은 적정량의 알코올 소비는 권장할 것으로 결정하였다. 다시 알코올은 공식적인 관계와 여가를 보낼 때, 공적인 관계에서나 인간관계에서 필요 불가결한 물질이 되었다.

그러자 알코올의 부정적인 결과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20년 동안에 1인당 순 알코올 소비량은 1960년 3.6ℓ에서 1980년에 8.7ℓ로 2.2배가 증가하였다. 알코올의 남용으로 인한 비행은 5.7배나 증가하였으며 알코올 중독자는 7배가 늘어났다.

그러한 문제가 계속 진행된 결과 1985년에는 높은 수준의 반 알코올 캠페인이 일어났다. 많은 피해를 경험하고 나서야 알코올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음주국 러시아에서 반 알코올 캠페인이 있었다는 것에 생소해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알코올 문제가 심할 때 알코올 판매를 반대하는 정책이 수립되거나 규제가 강화되는 것은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예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캠페인들은 치밀하게 전개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다지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즉, 그 이유는 알코올의 음용과 관련 정책에 대한 과학적이고 사회적인 검토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 알코올이 당시의 러시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는 점, 효과적인 사회운동이 가져야 하는 원칙 등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점 등이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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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하 (1133)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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