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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8월16일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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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5월23일 07시36분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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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의 술 이야기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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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의 술 이야기⑤

 

아버지의 술, 竹筒酒

 

지난달에 비린 거 좋아하시는 제 아버지 이야기를 했었지요. 기왕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할까 합니다. 뭐 물론 술 이바구라~^^

아버지가 오대산 진고개 아래 손수 집을 짓고 들어가신 건 이순(耳順)을 몇 해 넘긴 후였습니다.

평생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였건만 진고개 집으로 들어간 후에는 영락없는 농사꾼이 되어 사셨지요. 그러지 않을 수도 없었어요. 배추․깻잎․고추 같은 푸성귀는 물론이고 고구마․감자․땅콩 등등 ‘텃밭’이라기엔 힘에 부치는 농사를 혼자 지으셨으니까요.

 

그러나 이 땅의 수많은 부모들이 그러하듯 아버지의 농사 또한 당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세가 드시며, 젊었을 때 소원했던 저희 사남매와 손주들을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이었을 겁니다.

여름이면 와서 풀 뽑아라, 가을이면 배추 뽑아 김장 해가라, 감 따라…. 아버지의 부름에 일일이 응하는 게 그 당시엔 고역이었습니다. 나름 애써 시간을 내어 가면 아버지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힐끗 쳐다보며 “왔나?” 한 마디가 고작이어서 갱상도 남자의 무뚝뚝함을 평생 겪고 살면서도 은근히 심정 상하고 심통이 났습니다.

 

말투는 세상 무심한 듯해도 우리가 도착하면 사실 혼자 사부작사부작 분주하셨어요. 비린 거 좋아하는 식성은 변하지 않아 거실에 들어서면 천장을 가로지른 철사 줄에 별별 물고기들이 ‘날 잡아잡수~’하듯 줄줄이 매달려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아버지는 그 중 꾸덕꾸덕 맞춤하게 마른 놈으로 몇 마리 골라 장작난로 위에 정성껏 구워 내놓으셨는데, 쪽쪽 결대로 찢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정말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노후를 맡길 곳으로 진고개 아래 그 땅을 택하신 건 어쩌면 주문진항이 가까워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보곤 합니다.

 

그 기막힌 안주를 내놓고 아버진 장독대로 술을 가지러 가셨어요. 오대산 산골에서 나는 온갖 것으로 술을 내셨지만 아버지 술의 백미는 죽통주(竹筒酒)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죽통주만 오대산 태생이 아니었습니다.

죽통주를 담그는 방법은, 실하고 싱싱한 대나무를 마디마디 잘라 앞뒤 막힌 빈 대통을 만듭니다. 그리고 커다란 항아리 안에 빈 죽통을 차곡차곡 세워 빼곡히 담고 담금 주를 그냥 붓는 겁니다. 찰랑하게 채웠던 술이 하루 이틀 지나면 쑤욱 내려가 그럼 또 다시 붓고 하기를 반복하는데, 항아리 안의 술이 줄어드는 이유는 삼투압현상이겠죠. 그렇게 빈 죽통 안으로 서서히 스민 담금 주는 대나무의 그윽한 향을 휘감은 채 그윽이 익어가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건, 같은 항아리 안에서 똑같은 양의 담금 주 안에 몸을 담그고 있던 죽통들이건만 그 안에 들어있는 죽통주의 양은 제각각이어서 어떤 건 꽤 묵직하게, 어떤 건 한 잔도 나올까말까 했어요.

앞뒤 막힌 죽통주 한쪽 면에 양쪽으로 구멍을 내면 잘 흘러나왔는데, 사위들에게 죽통주를 따라주시며 흐뭇해하시던 표정은 좀처럼 잊히지 않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그때만 해도 제가 술맛을 알기 전이라 그 진품 죽통주의 맛을 제대로 느껴볼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죠.

 

싱싱한 해물을 사기 위해 여명도 밝기 전 주문진항에 나가 들어오는 배를 기다리시던 아버지.

잘 손질된 복어를 냉동칸 가득 채워놓고 우릴 기다리시던 아버지.

그렇게 안팎을 꼼꼼히 가꾸던 당신이 가시고, 저희 남매들도 자주 찾을 수 없다보니 ‘귀곡산장’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나무와 풀로 우거져버린 아버지의 집….

 

아버지와 그닥 살갑게 지내지 못했던 저는, 붙들고 싶어 하시는 걸 진작 눈치 챘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시키시는 일을 부랴부랴 해놓고 서울 돌아올 궁리만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슬금슬금 해가 중천을 넘어가던 어느 날, 배웅 나온 아버지의 한 마디 때문에 결국 다시 들어가 하룻밤 더 묵고 새벽에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뭐라 하셨냐구요?

 

“이자 떠나모 해 때무레 눈이 부시가 운전하모 위험한데…. 내일 새복에 가그라…(웅얼웅얼….)”

글·김경녀 / 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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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하 (1133)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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