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④ - 삶과 술
  • HOME
  • 즐겨찾기추가
  • 시작페이지로
회사소개 설문조사
모바일보기
회원가입 로그인
2018년09월21일fri
기사최종편집일: 2018-09-21 09:17:39
뉴스홈 > 뉴스 > 컬럼 > 남태우 컬럼
2018년04월24일 19시37분 201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④ 

 


이렇게 화가와 조각가들이 앞 다투어 여성의 유방을 예찬하자, 왕과 귀족들은 아내나 애인들의 초상화를 주문할 때 유방을 온전히 드러낸 모습으로 그려줄 것을 요청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회화에 그토록 많은 여인들이 아름다운 젖가슴을 당당히 풀어헤치고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유방의 관능성을 최고의 미로 찬양했던 궁정과 귀족 사회의 분위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귀족 문화에서 제작된 나체화들이 오로지 여성의 유방을 위해 그려졌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 미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관능미를 돋보일 수 있을까’였다. 남성들 역시 귀한 보물인 여체의 값을 올리기 위한 방법에 골몰했다. 귀족의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벌거벗은 몸을 자랑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결론은 초상화의 모델이 되는 것? 그래서 곧 누드 초상화가 홍수를 이룬다. 유명 화가들은 유럽 각국으로 불려 다니며 벌거벗은 여체를 실컷 눈요기하는 호강과 즐거움의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밋밋한 알몸만으로는 뭔가 허전하다. 화가들은 여인의 나체를 보여주면서 기교를 부렸다. 여인의 탱탱한 젖가슴으로 욕망을 자극하는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그림에 표현된 탐스런 유방은 정욕에 불타는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관능에 빗장을 푼 유방의 아름다움에 넋을 뺏긴 시인 클레망 마로(Clément Marot, 1496

-1544)는 유명한 시〈아름다운 유방(Blasoniu Beau Tin)〉에서 “흰 비단 같은 유방이여, 장미꽃도 무색한 유방이여- 누르면 누를수록 튀어나오는 유방이여, 정욕으로 금세라도 터질 것 같은 유방이여”라고 눈물 어린 ‘유방찬가’를 바쳤다. 그토록 유방을 찬양하던 시기는 르네상스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클레망 마로는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유명했다. 1530년대부터 프랑스에서는 인체를 찬양하거나 풍자하는 ‘블라종(blason)’이라는 형식의 시가 크게 유행했다. 마로의 이 시는 처음으로 여인의 육체를 한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블라종으로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빛나는 직관, 개인적인 관점, 리듬을 타는 매끄러운 문체로 여성을 찬양하는 감각적 만족감이 특징이다.

심지어는 성스런 마리아를 그릴 때도 젖가슴이 불룩 튀어나온 에로틱한 모습으로 그렸을 정도니, 당시 누드화의 본국을 자처한 이탈리아는 탁월한 성애 묘사로 유럽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특히 베네치아의 최고 화가인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는 누드화의 대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다. 그는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렸던지 왕족의 수입과 맞먹는 돈벌이에 귀족보다 더한 특권을 누렸다.













Danaë, 1553-54/ Tiziano)                   (Venus with a Mirror, 1555/ Tiziano)

그의 그림 중 가장 선정적인 누드화로 극찬을 받고 있는 것은 <우르비노의 비너스(The Venus of Urbino)>(1538)다. 우르비노 공의 아름다운 부인이 실제 모델을 선 이 그림에서 색기(色氣)가 뚝뚝 떨어지는 요염한 눈초리와 시선을 음부로 유혹하는 왼손은 관능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매혹적인 그림에 탄복한 각국의 황제와 영주들은 부러움과 시기를 참지 못하고 티치아노의 비너스 그림을 앞 다투어 수집했다. 또한 자극을 받은 왕족과 귀족들이 질세라 누드 초상화를 주문하는 바람에 이를 흉내 낸 아류 누드화가 전 유럽에 유행하게 된다. 이처럼 누드화는 르네상스 시대 가장 인기를 끈 그림의 주제였다.











 

(Venus of Urbino(1538)/ Tiziano) 

당시 스페인 왕인 펠리페 II세(Felipe Ⅱ)의 애첩인 에볼리(La Principessa d'Eboli) 후작부인, 프랑스 왕인 앙리 II세(Henri II)의 정부 디안느 드 푸아티에(Diane de Poitiers, 1499~1566)가 성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누드화의 단골 모델이었다. 앙리 2세도 그의 정부 푸아티에의 유방을 본뜬 자신의 전용 술잔을 만들었다. 당시 프랑스 궁정사회는 작고 아담한 유방을 이상적인 유방으로 보았는데, 앙리 2세는 애인의 매력적인 유방을 술잔으로 만들어 만천하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앙리 2세의 애첩인 푸아티에는 비록 왕보다 나이가 스무살이나 많았지만 헬레네만큼이나 완벽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디안느 드 푸아티에

백옥 같이 하얀 살결에 조각 같은 콧날, 크고 카리스마 있는 눈동자, 유연한 몸매를 비롯하여 도저히 앙리와 20년의 나이차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젊고 아름다웠다. 특히 그녀는 그녀만의 특수한 미용법이 있었는데, 그녀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를 비롯하여 냉수욕과 사냥, 승마 등 온갖 스포츠를 즐겼다고 한다. 햇볕이 있는 낮에는 방안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고 새벽녘에만 승마를 하였으며 부득이 낮에 외출을 할 때는 하얀 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만 내 놓은 상태로 다녔다고 한다.

모든 궁정의 여자들은 디안이 유지하고 있는 젊음의 비결을 부러워하면서 그녀를 따라했다. 왕비 카트린 드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1519〜1589)마저도 그녀와 같은 복장으로 낮에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밤이 되면 앙리는 디안과 깊은 쾌락 속으로 빠져 들다가도 잠만큼은 디안이 왕비 카트린의 침실에서 자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앙리 2세가 무술 시합에서 입은 상처로 인해 급사하면서 디안도 궁정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디안에게 남편을 빼앗겼던 카트린은 그녀의 성과 재물 보석을 반환하게 하였고, 성마다 앙리와 디안의 이니셜이 새겨 있었는데 이것을 모두 카트린과 앙리의 이니셜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녀의 권세가 한창 드높을 때, 그녀는 하루에 여섯 번 이상 성관계를 가질만큼 성욕이 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광적인 섹스가 최상의 수면제라고 여겼다. 그녀의 공식적인 연인들만 해도 무려 21명이나 되었으며, 그 외에도 60여 명이나 되는 성 유희 대상인 남성들이 늘 대기하고 있다가 그녀의 부름만 떨어지면 언제라도 그녀의 침실로 달려왔다고 한다.

앙리가 죽은 후 6년 뒤 디안도 아네 성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나이 66세였다. 그녀가 죽기 6개월 전에 디안을 만난 브랑톰은 66세의 디안이 지닌 아름다움은 아무리 목석같은 사나이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고 한다. 절세 미녀에 홀딱 반한 앙리 왕은 그녀를 살아있는 여신이라 부르며 엄청난 부와 명예 권력을 주었다. 또 당대의 뛰어난 시인과 조형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빛나는 미모를 수많은 그림과 판화와 조각으로 만들어 기념하게 했다. 왕은 종종 애첩의 모습을 나체로 그릴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오로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유방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피렌체의 최고 권력자인 메디치가의 딸인 마리아 드 메디치(Maria de' Medici)도 루벤스의 누드모델을 자청했고, 심지어는 교황 보니파시오 VIII세(Papa Bonifacio VIII)의 누이인 율리아 파르네제(Giulia Farnese, 1474〜1524)마저 누드모델로 나섰다. 그녀는 교황 알렉산데르 VI세(Papa Alessandro VI)의 정부(情婦)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줄리아’라는 뜻의 ‘줄리아 라 벨라(Giulia la bella)’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로렌초 푸치(Lorenzo Pucci)는 그녀를 “볼수록 점점 사랑스러운 여인”이라고 묘사했다. 알렉산데르 VI세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는 그녀를 “어두운 혈색, 검은 눈동자, 동그란 얼굴, 그리고 어떤 특유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묘사하였다.














Maria de' Medici                    Giulia Farnese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 두 사람의 정사(情事)는 좋지 않은 소문과 험담의 이야기 거리였으며, 줄리아를 가리켜 ‘교황의 매춘부’, ‘그리스도의 다리’ 등의 말로 비꼬았다. 알렉산데르 VI세는 자신의 정부인 줄리아의 오빠인 알레산드로 파르네세(Alessandro Farnese)를 추기경에 서임(敍任)하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알레산드로에게는 ‘속치마 추기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줄리아는 라우라(Laura)라는 딸을 낳았는데, 라우라의 아버지가 오르시노인지 알렉산데르 VI세인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물론 그녀의 누드화는 피에트로 교회당(Chiesa di San Francesco)에 세울 자신의 사후 묘비 조각을 위해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덩달아 화가들도 부인, 딸, 애인을 누드 초상화에 등장시켰다. 매혹적인 소유물을 자랑하고 싶은 남성의 과시욕과 미모를 미끼로 남성을 홀리려는 여인의 야심이 벌거벗은 초상화를 유행시킨 배경이 된 것이다. 어느 남성인들 예쁜 유방을 가진 자기 여인을 자랑하고 싶지 않겠는가. 백치미인인지도 모르겠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귀족 문화에서 제작된 나체화들이 오로지 여성의 유방을 위해 그려졌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의 애인인 <포르나리나, 혹은 젊은 여인의 초상화(La fornarina or Portrait of a young woman)>,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가 흠모한 <시모네타의 초상화(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가 그린 <알폰소 다발로스(Alfonso d'Avalos)의 애인 초상화>(1533), 티치아노의 딸 <리비아니아의 초상화>는 유방이 명백하게 화면의 중심이요, 주제임을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그림들이다. (Portrait of a Young Woman with a Unicorn / Rafael Santi)














(Portrait of Simonetta Vespuccias Nymph(1475)/ Botticelli)
            (가슴을 내보인 여인/ Tintoretto)

 보티첼리의 그림속 비너스로 등장하는 시모네타(Simonetta) 인물은 실존 여인이다. 그녀는 당시 피렌체에서 최고의 미인으로 칭송을 받았고, 심성, 매너 또한 뛰어나 모든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화가 보티첼리 또한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지만 고백을 할 순 없었다. 그녀는 정혼자 줄리아노(Giuliano di Lorenzo de' Medici, 1479~1516)가 있었고, 더구나 그는 보티첼리를 후원하는 피렌체 최고의 갑부 로렌조 드 메디치(Lorenzo de' Medici)의 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는 그림을 그리는 안료(顏料)가 고가였기 때문에 후원 없이는 화가생활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후원자의 분노를 사는 행위는 후원 중단을 의미하는 일이다.

보티첼리는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고백을 결심하지만, 시모네타는 22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만다. 그녀의 약혼자였던 줄리아노는 곧바로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지만, 보티첼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그녀를 사모하며 기억한다. 유언으로 시모네타의 곁에 묻어 달라고 부탁하고 그녀가 묻힌 오니산티 성당 공동묘지에 묻힘으로서 비로소 죽음 후에 그의 소원대로 그녀와 함께 하게 된다. <비너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 은 그녀가 죽은 후 8년 후에 보티첼리가 그녀를 기억하며 그린 그림이고, <프리마베라(Primavera)>의 비너스 또한 그녀가 주인공이다. 봄이라는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표정은 우울하다.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올려 0 내려 0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김용철 (987)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남태우 컬럼섹션 목록으로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 ⑥ (2018-06-25 06:20:41)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③ (2018-03-31 14:38:12)

식초교실 3기 개강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공지사항 독자투고 기사제보
상호명 : 삶과술   등록번호 : 서울다07777  등록일 : 2007년 07월 16일  발행인/편집인 : 김원하  주소 : 서울시 중구 신당5동 142-8 
전화 : 02-2233-6749  팩스 : 02-2238-6074 삶과술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 보호를 받으며, 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c) 2018 Ver5.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