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술의 역사를 보며 우리 술의 역사를 비교해 본다 - 삶과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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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1월15일t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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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2월07일 06시38분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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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술(酒)의 맛이 균질화 되기까지의 역사적 경위에 대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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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술의 역사를 보며 우리 술의 역사를 비교해 본다

「일본 술(酒)의 맛이 균질화 되기까지의 역사적 경위에 대해」를 읽고

 

역사에 대한 경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것이다. 누가 이 말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만약이란 가정법을 사용해도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우리 술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나 책들을 읽을 때면 만약 우리 술에서 일제 강점기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 술은 어떠할까?’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일본 술 관련 발표집 자료를 읽고 우리 술 역사에 대해 다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자료의 제목은「일본 술(酒)의 맛이 균질화 되기까지의 역사적 경위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조교인 츠아오끼 다카히로(靑木隆浩, Aoki Takahiro)가 발표한 내용 때문이다. 우리 술과 관련되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http://www.nfm.go.kr/_Upload/BALGANBOOK/616/00.pdf)

 

근대화 이후(1800년대 말) 일본 청주 술 품질의 발전과정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자가 양조의 금지 및 국립양조연구소의 설립과 이후 전국주류품평회를 통해 나타난 주류의 품질 향상 및 지역별 균일화 등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적은 글이다. 물론 일본 주류 역사를 잘 알지 못하기에 이 글이 얼마나 정확한지 그리고 더 복잡한 내용이 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이 글을 토대로 우리 술의 역사와 비교해 보려 한다.

 

일본도 1900년대 초에는 국세에서 주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40%가 넘을 정도로 높은 비율이었다. 청일전쟁 후의 재정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청주 주세를 높이면 가격의 상승을 초래 하고 그로 인해 자가 양조 술인 탁주나 청주의 소비량이 증가해서 결국 주세 수입의 감소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이에 주조조합에서는 자가용(自家用)도 술의 제조를 금지할 것을 요청하였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1898년부터 자가 술의 제조를 금지 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역시 1934년 기록을 보면 주세가 국세 중 29.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세금 징수의 수단이었다. 일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할 한 세금 징수를 위해 조선통독부 역시 1934년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를 폐지하였다.

 

탁주의 제조도 일본은 1800년 말에는 자가 양조로 만들어 마시는 탁주가 청주보다 많은 지역이 있을 정도였다. 그 이유로는 경제활동이 활발한 지역은 청주 제조업이 발달하였으나 농촌 지역에서는 탁주의 자가 양조로 인해 청주의 제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역시 시기적으로는 다르지만 주세법이 공포된 1909년 이후 자가 양조가 허가되어 있던 1913년 조사에 의하면 신고 된 제조수량의 87.7%를 탁주가 차지했으며 약주 및 청주는 5.3%를 차지 할 정도로 탁주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처럼 농촌에서 자가 양조로 쉽게 만들어 마시는 술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했으면 두 나라 모두 세금 확보를 위해 금지가 되었다.

 

일본은 주세 확보를 위해 국립양조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주조조합은 품질의 향상과 생산비의 절감에 필요한 주조 연구를 정부에 전가했다. 1904년 ‘국립 양조시험소’를 설립하였으며 연구결과를 기초로 양조장에 기술 지도를 실시하였다. 이후 양조시험소는 연구 성과의 확산을 위해 민간단체로 ‘일본 양조협회’를 설립 하였고 이후 1900년 후반부터 1910년 사이에 주조 기술의 지역 간 격차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도 1909년 마포에 양조시험소가 설립되었으며 1910년 한일 합방에 의해 조선총독부 기관으로 이관되었다. 이이후 기관명이 변경되었지만 지속적으로 각종 주류의 시험양조, 주류 및 분석을 실시하였으며 1929년 설립된 조선주조 협회는 기술 강습을 담당하였다.

 

일본 주조 기술이 평균화 되면서 1907년부터 시작된 전국 주류 품평회가 출품된 술의 맛을 평가하고 출품된 술의 서열을 정하는 것으로 변화 하였다. 특히 주류 품평회에서 선발된 술은 도쿄 시장의 신규 개척에 성공하기가 쉬워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나타내었으며 선발된 술의 품질 기준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청주의 품질 평균화는 더욱더 확대되었다. 우리나라도 주조업의 향상과 제품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1930년 조선주류품평회를 개최하였으며 매년 지방을 돌며 관능평가와 이화학 시험을 병행해서 업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이 발표집에 나온 내용은 일본 술에 있어서 청주의 맛의 평균화 역사를 간략히 다루었다. 이러한 역사적 판단이 정확한지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일본과 우리나라는 시간의 차이만 있지 거의 비슷한 과정으로 술의 역사적 반복을 해왔다. 이 부분이 일제강정기라는 이유도 있을 수 있지만 술이 현대화하는 변화 과정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일본도 여러 이유로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먼저 겪었고 재래식 술 제조 방법이 현대적 술 제조방법에 정복당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변해왔다. 우리 역시 그 과정을 타의든 자의든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일본 술은 이러한 역사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현재는 전 세계로 수출되는 매우 고급술의 반열에 올랐다면 우리 술은 이후 여러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보다는 침체의 길을 걸었다.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현재 두 나라의 술 흐름은 다르다. 이것이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단순히 일본이 우리 술의 역사를 단절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두 나라가 걸어온 길이 매우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발표집 자료를 처음 올리신 분의 글을 마지막으로 적으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하려 한다.

“의견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우리 술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되 반면교사로 삼을 지점도 존재 한다”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직물연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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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하 (1133)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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