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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08월30일 09시00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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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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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



베니스 물의 도시 후난 성 봉황

후난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도시

 

 

후난 성(湖南省)에는 아름다운 관광지가 수도 없이 많다. 이 가운데서 상서 토가족(土家族), 묘족(苗族) 자치주 산하의 봉황(鳳凰)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도로 이탈리아의 베니스처럼 물의 도시다.

봉황은 이름 그대로 소도시이다. 맑은 강물이 흐르는 언덕에 위치한 도시에 거리란 하나밖에 없고 고요하고 아늑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봉황은 중국은 물론 내외에 이름이 자자한 관광지이다.

후난 성 성도인 장사에서 봉황까지는 자그마치 580여㎞거리, 버스로 6시간 이상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관광지다. 평일인 탓도 있지만 텅 빈 고속도로를 쉼 없이 달리다보면 지루하기도 하다.

식사 때가 되어 휴게소에 들러도 이방인이 쉽게 끼니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런 것을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중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여행이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의 청(淸)나라 때인 1704년에 도시가 건설된 봉황은 토가 족과 묘족풍의 옛 건물들이 특색을 자랑하고 두 소수민족의 풍속이 유지되어 있으며 갠 날에는 온통 맑은 푸름으로 단장하고 노을이 지면 붉게 타다가 가끔 황금빛으로 찬란하기도 한다.

문명의 이기가 아직 스며들지 않은 이곳에는 청나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타강(沱江)과 江을 이어주는 虹橋(홍교) 그리고 江을 따라 들어선 오래된 전통가옥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장자지에(張家界)에서 차로 3시간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봉황고성(鳳凰古城)은 험한 산과 계곡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오지다.

외부세계와 철저하게 단절되었던 古城은 60여 년 전 이곳 출신의 문학가이며 역사학자인 沈從文(심종문)의 소설 ‘변경도시’를 통해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古城 근처에 성벽 길이가 190km에 이르는 남방장성이 있다.

남방장성은 약 400여 년 전 청나라에 복종하지 않는 토가 족과 묘족을 격리시키기 위해 쌓은 성벽이라고 한다.

현재 봉황은 중국 국가급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으며 타강을 따라 양쪽에 조성된 성과 마을로 묘족, 토가족을 중심으로 18개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받고 있다.

봉황은 후난 성(湖南省) 서부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는 장시 성(江西省) 노계현(泸溪县)과 접해있으며, 서쪽으로는 구이저우 성(贵州省) 동인(铜仁)지역, 남쪽으로는 후난 성 마양현(麻阳县), 북쪽으로는 후난 성 길수시(吉首市),과 접해있다. 총면적은 1758 km2 로 총인구는 40만 명이다. 봉황현은 운귀고원(云贵高原)의 영향을 받아 지형과 지모(지구 표면의 형태)가 매우 복잡하며, 산세가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서북쪽은 고지대나 동남쪽은 저지대이다. 봉황현의 가장 큰 지리적 특징은 카르스트(karst) 지형이며, 석회암 동굴이 드물게 보인다. 풍경이 수려하고 기후는 온난한 편이어서 사계절 모두 관광이 가능하다.

 

봉황에서 가볼만 한 곳은?

 

◇ 사람이 아름다운 봉황고성

봉황고성은 중국의 4대 고성으로 불리며 묘족과 토가 족이 타강을 중심으로 4,000년간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봉황고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시인묵객들은 말한다. 山美, 水美, 歌美, 人更美(산이 아름답고, 물이 아름답고, 노래가 아름답고, 사람이 특히 아름답다)라고 한다. 봉황고성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 마을” 이라고 한다. 타강에서는 여행객들을 태운 나룻배가 오가고 있고,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깨끗한 물에 야채를 씻는 사람도 있고, 빨래하는 사람도 있다. 디딤 다리에서 묘족 소수민족 전통복장을 입고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특히 밤이 되면 물에 비친 야경이 제일 멋있는 곳이다.

봉황고성은 중국국가 4A급 풍경구로 현(县) 소재의 타강(沱江)진 내에 위치하며, 역사 문화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원나라와 명나라 때는 흙으로 쌓아 올린 토성이었고, 명가정(明嘉靖) 35년(1556년)에는 벽돌로 재건하였다. 청강희(清康熙) 54년(1715년)에는 돌로 만든 석성(石城)으로 재건되었다. 석성은 둘레가 2km, 높이가 5.7m, 마루의 넓이가 3.7m가 되었다.

봉황고성은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었으며, 또한 고성 전체가 심종문 생가(沈从文故居), 웅희령 생가(熊希龄故居), 북문성루(北门城楼), 동문성루(东门城楼) 등과 같은 인문학적인 유물들로 가득하다.

 

◇ 남방장성(南方長城)

봉황에 있는 장성이다. 400여 년 전 명청(明淸) 통치자들이 묘족과 토가족을 한족(漢族)과의 분리를 위해 건축한 장성(長城)으로 길이는 190km이다. 이는 명청 통치자들이 남쪽의 소수민족, 특히 묘족을 탄압했던 산물이다. “묘족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며, 한족 또한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규정을 정해, 묘족과 한족의 무역 및 문화교류를 금지했다. 현재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장성 정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남방장성에서 묘왕성을 가는 길가 언덕이 온통 차밭으로 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도 차 생산지임을 알 수 있다.

 

◇ 양가사당(杨家祠堂)

봉항고성 내에 있다. 본래는 양씨 가문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을 치르는 장소였으나, 현재에는 봉황고성 풍경구의 중요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청조(清朝)16년 (1863년)에 지어졌으며 전체 면적은 770 m2이다. 사당은 사합원(四合院) 형태이며, 직사각형 모양의 목조 건물로 대부분 훼손 없이 완벽히 보존되어있다.

<봉황 현지에서 김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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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하 (1133)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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